단종의 출생배경과 비극
단종은 조선 제5대 문종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 씨입니다. 다른 남자 형제도 있었지만, 모두 어릴 때 죽었기 때문에 문종의 외동아들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현덕왕후 권 씨가 세자빈 시절 단종을 출산하고 하루 만에 죽자, 아버지 문종이 새로운 정실부인을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 없이 성장합니다. 즉 할아버지 세종, 할머니 소헌왕후, 아버지 문종, 어머니 현덕왕후가 모두 승하한 후 혈혈단신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가족관계로는 왕비 1명이며 후궁과 자녀 모두 없습니다. 단종은 조선이 건국된 이래 처음으로, 태어날 때부터 왕으로 지목된 인물이었습니다. 단종의 할아버지인 세종이 뒤늦게 형인 양녕대군을 대신해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당시 세종의 장자이자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은 처음부터 왕세자 신분은 아니었습니다. 문종은 세 번째 부인으로부터 1남 1녀의 자식을 얻었으며, 그 아들이 바로 훗날 조선의 제6대 임금인 단종이었습니다. 단종이 태어난 1441년은 할아버지 세종이 임금이자, 아버지 문종이 대리청정하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단종은 조선 최초로 안정적인 왕의 길, 즉 원자-세자-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습니다. 단종이 6세가 되는 해에 할머니 소헌왕후가 돌아가셨고, 10세가 되었을 땐 할아버지 세종이 승하합니다. 효자였던 아버지 문종은 이를 몹시 슬퍼하여 정성껏 삼년상을 치릅니다. 무려 6년을 치른 문종은 결국 몸이 약해져 왕위에 오른 지 2년이 조금 지나서 병으로 승하합니다. 결국 단종을 보필한 것은 왕실의 어른이 아닌, 아버지 문종의 유언을 받든 고명대신들이었습니다.
황표정사
나라를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국가 운영에 필요한 '시스템 구축과 운영'입니다. 조선은 관료제 사회입니다. 아버지가 높은 관리라고 해서 아들이 자동으로 관리가 되는 귀족사회가 아닙니다.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가 될 수 있으며 이후에도 오직 실력으로 대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사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비단 국가뿐만 아니라 다른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어느 소속에 배치하고 일을 맡길 것인가에 대한 인사관리는 어디서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인사 담당이 특정 세력의 영향을 받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부정이 단종 때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단종은 12세에 왕이 됩니다. 왕이 되기엔 너무 어린 나이입니다. 어린 단종은 아직 정치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관리를 임용할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황보인, 김종서 같은 대신들이 아버지 역할을 해줍니다. 그때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고명대신인 김종서입니다. 김종서는 정말 아버지처럼 단종을 지켜줬습니다. 김종서가 추천하는 사람의 명단 위에 노란색 표시점을 찍어 왕이 그 사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를 '황표정사'라고 합니다. 이는 당시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김종서 측에서 시행한 변칙적인 인사행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수양대군은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계략을 꾸미게 됩니다.
계유정난
단종 즉위 당시, 숙부인 수양대군의 세력은 위협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종의 입지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년이던 왕이 점차 늠름한 청년 군주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수양대군이 모를 리 없었습니다. 수양대군은 자신의 야심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 인물입니다. 스스로 몸을 낮추고 낮춰 조용히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심지어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갈 정도였습니다. 사실 사신으로 중국에 가는 건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암살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양대군은 이 일을 호랑이처럼 대범하게 해냅니다.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의 집에 복면을 쓴 검은 자들이 떼거리로 들이닥칩니다. 수양대군이 사람을 모아 불시에 김종서 집에 들어가 쇠몽둥이인 철퇴로 김종서와 황보인을 모두 제거해 버린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김종서가 안평대군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꾀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김종서 세력을 숙청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수양대군의 책사였던 한명회에 의해 조정 신료들의 목숨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계유년 하룻밤에 조선의 정치 판도가 뒤집힌 사건, 수양대군이 절대적 권력을 갖게 된 정변인 계유정난이 발발한 것입니다. 계유정난은 '계유년에 발생한 어지러운 난을 바로잡았다'란 뜻입니다. 김종서와 안평대군의 역모를 진압하고 세상을 평정하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 역사의 승자인 수양대군에 의해 붙여진 이름일 뿐 실상은 수양대군이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