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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사명대사 어린 시절, 승려가 된 '유정', 서산대사의 가르침

by 다시한번도전 2024. 7. 6.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명대사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명대사

 

승려 사명대사의 어린 시절

조선시대에 사명대사는 불교계뿐 아니라 백성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명망 높은 승려였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사명대사는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 계율을 어기고 최전선에서 백성과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1544년 중종 39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명대사가 부모에게 받은 이름은 임응규였습니다. 응규의 집안은 밀양에서 유명한 사대부 집안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궁중 음악을 관장하는 장악원의 장악원정이라는 정 3품 벼슬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이후 대구 수령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응규는 어릴 때부터 철저한 유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인, 의, 예, 지, 충, 효 같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응규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따랐을 뿐 아니라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 정도로 영특해서 일곱 살에는 유교의 이치에 관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총명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똑똑한 손자를 가르치며 응규의 할아버지는 훗날 내 손자가 유교적 소양을 갖춘 유능한 관료가 되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응규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그의 인생을 뒤흔드는 일이 일어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는 아버지까지 돌아가셨습니다. 응규에게 유교를 가르쳐주던 할아버지는 이미 몇 해 전 세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연달아 가족을 잃은 응규는 의지할 사람 한 명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승려가 된 '유정'

홀로 열일곱 살이 된 응규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결정을 내립니다. 집을 떠나 승려가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응규는 어릴 때부터 유교 외에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고 당시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절에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율곡 이이도 어머니 신사임당의 삼년상을 치르고 금강산에 들어가 1년간 불교에 매진했었습니다. 부모님을 잃고 크게 상심한 응규는 승려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했던 유교적 가르침과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응규는 경상북도 김천 직지사의 승려가 되어 17년 동안 불렸던 이름 '임응규'를 버리고 승려로서 새로운 이름을 받습니다. 바로 '유정'이라는 법명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던 세상을 등지고 사대부로서 관직 진출도 포기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사대부가의 아들 임응규에서 승려 유정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승려가 된 유정은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의 손에서 책이 떨어지는 날이 없었습니다. 불교 경전뿐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읽은 유교 경전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꾸준히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온갖 책을 탐독하며 세상의 이치를 깨치는 일에 몰두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열여덟 살이 도니 유정에게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일 기회가 생깁니다. 바로 '승과'가 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승과는 승려를 대상으로 나라에서 실시한 과거시험으로, 승과에 합격한다는 것은 나라에서 인정하는 최고위급 승려가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유정은 운 좋게 14년간 부활했던 승과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했습니다.

 

서산대사의 가르침

유정은 누군가의 제자가 되어 더 깊이 불교를 탐구하겠다고 결심합니다. 바로 조선 최고의 고승이자 당시 불교계에서 가장 존경받은 승려,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서산대사는 열두 살에 성균관에 입학한 수재였지만, 열다섯 살에 불교를 접하면서 출가한 인물입니다. 당시 불교는 참선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과 교리 및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 이렇게 두 개의 공식 종파가 있었는데, 서산대사는 선종과 교종을 아우르는 선교양종판사까지 오른 불교계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높은 자리를 버리고 수행을 위해 묘향산에서 은거했습니다. 유정은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기 위해 묘향산의 보현사로 향했습니다. 서산대사는 자신을 찾아온 유정을 수제자로 삼았습니다. 서산대사의 수제자가 되고 3년 후 유정은 자신의 불교 정신을 꿰뚫는 두 글자 '사명'을 얻게 됩니다. 넉 '사'에 바다 '명'을 쓴 사명은 '바다처럼 광활한 불법의 세계를 탐구해 사방에서 괴로움에 시달리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선비들이 이름 앞에 '호'를 붙이는 것처럼 승려들은 법명 앞에 '법호'를 붙이는데, 유정은 처음 승려가 됐을 때 받은 자신의 법명 '유정' 앞에 법호로 '사명'을 붙였습니다. 훗날 임진왜란 명장으로 인정받는 '사명대사'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사명대사는 3년간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서른아홉 살이 되던 해에 정처 없이 전국을 유랑하면서 자신의 불법을 전하고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점차 조선 불교계에서 사명대사의 이름이 드높아져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