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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장보고 당나라로 떠난 이유, 무령군 입대, 해상 무역가의 길

by 다시한번도전 2024. 7. 5.

해상 무역가의 길을 떠난 장보고
해상 무역가의 길을 떠난 장보고

 

신라 장보고가 당나라로 떠난 이유

장보고는 780년대 후반, 통일신라 제38대 원성왕이 다스리던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곳은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로 통일신라 서남해에 위치한 섬이었습니다. 장보고는 씩씩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에게는 '정년'이라는 친한 동네 친구가 있었는데, 둘은 친형제처럼 어울리면서 바다를 뛰어다니며 놀곤 했습니다. 그간 두 사람이 당시 푹 빠져 있던 게 하나 있었습니다. 둘 다 무예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무예에 흥미를 느꼈던 장보고에게 특별한 능력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활을 잘 쏘는 능력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출중한 무예 실력을 자랑하던 장보고는 무예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바다 건너 당나라에 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당나라는 아주 개방적인 사회였습니다. 다양한 종족과 민족집단을 수용하면서 나라를 통일했고 이 때문에 외국인을 배척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민족을 용병과 조정의 관리로 쓰는 일도 흔했습니다. 신라에서도 당나라에 건너가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장보고 또한 고심 끝에 친구 정년과 함께 당나라로 떠납니다. 장보고가 당나라로 떠난 데에는 신라의 골품제도 영향이 컸습니다. 신라는 혈통에 따라 골과 두품으로 신분에 차별을 두었는데, 일반 귀족과 평민이 속하는 6개의 두품도 수도에 사는 사람으로만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장보고는 수도인 금성, 지금의 경주에서 한참 떨어진 섬 출신 평민으로, 두품에도 속하지 않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가 무예를 아무리 잘한 들 신라에서 출세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보고는 무장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꾸며 당나라로 떠난 것입니다.

 

무령군 입대

원대한 꿈을 품고 당나라에 도착한 장보고와 정년은 서주라는 도시가 있는 강회 지역으로 가서 무령군에 입대합니다. 무령군은 서주 일대를 다스리던 절도사가 지휘하는 군대로, 당나라에서 절도사는 일종의 지방군 사령관이자 동시에 행정권까지 행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관리였습니다. 그런 서주 지역 절도사의 주력 부대가 바로 무령군이었습니다. 장보고와 정년은 수많은 군대 중 무령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무령군이 신라인 등 외국인 용병을 적극적으로 기용해 쉽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외국인이라도 공을 세우면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장보고는 무령군에서 뛰어난 무예 실력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말도 잘 탔다고 전해집니다. 섬에서 태어나 말은 타본 적도 없었을 텐데, 뛰어난 실력을 갖추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쏟았을 것입니다. 남들보다 몇 배로 훈련하고 타고난 재능까지 더해져 장보고는 금세 무령군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당나라에 온 지 5년이 지난 815년, 20대 중반의 장보고에게 드디어 능력을 발휘할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서주에서 당나라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서주 위쪽의 산둥반도와 치주, 청주를 장악하고 있던 이사도 세력이 당나라를 장악할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반란군과 무령군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무려 4년 동안 계속된 전쟁은 819년, 마침내 무령군의 승리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치열했던 전쟁이 끝나고 장보고와 정년은 무령군 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해상 무역가의 길

821년, 장보고는 돌연 무령군을 떠났습니다. 당시 당나라는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통해 동서양의 통로가 되어 활발하게 교역하고 있었습니다. 아라비아, 인도, 발해, 신라 등지에서 온 무역 상인들과 물건들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신기하고 귀한 물건을 사기 위해 당나라 수도 장안과 곳곳의 항구는 늘 북새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장보고는 해상 무역에 도전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그가 무역으로 마음을 돌린 것은 무령군에서 더 위로 진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무령군에서 계속 제자리에 머무르기보다 신라 평민이 당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였던 무역업을 선택한 것입니다. 당시 무역 기조는 조공무역에서 사무역으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무역을 해서 돈을 버는 평민도 많아졌습니다. 장보고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무역업에 대해 주의 깊게 살폈을 테고, 확신이 서자 군을 나와 해상 무역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한 장보고는 처음에는 배를 가지고 무역하는 상인들을 모아서 소규모로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무역상으로서 도약할 수 있는 기반 지역을 물색했습니다. 신라인이 모여 살고 있었던, 이사도 세력이 장악한 지역인 산둥반도가 장보고가 무역업의 거점으로 삼은 곳입니다. 장보고는 활발하게 무역이 이루어지는 산둥반도의 신라방에 자리를 잡고 신라 상인들과 교류하면서 경험과 부를 쌓아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