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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신유박해, 세도정치 시작

by 다시한번도전 2024. 8. 3.

정순왕후의 신유박해
정순왕후의 신유박해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순조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후궁 수빈 박 씨입니다. 1790년 6월 18일에 창경궁에서 정조와 후궁 수빈 박 씨 사이에서 태어난 순조의 탄생은 왕실의 큰 경사였습니다. 정조의 유일한 아들이던 문효세자가 요절했기 때문입니다. 순조는 이후 11세가 되는 1800년 정월에 왕세자에 책봉됩니다. 하지만 세자로 책봉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6월에 아버지 정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뜹니다. 결국 11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순조의 나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왕실 최고 어른이자 증조할머니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합니다. 정순왕후는 15세일 때 당시 66세였던 영조의 두 번째 왕비가 되었던 인물입니다. 당시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며느리였던 혜경궁 홍 씨보다도 10살이 어렸습니다. 하지만 족보상 왕실 최고의 어른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정조가 이뤄놓은 것들을 모두 부정하다시피 했습니다. 모든 것을 정조 이전으로 돌려놓았습니다. 규장각의 권한을 축소하고, 장용영은 폐지해 버렸습니다. 그중에서도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가장 먼저 노력했던 사도세자의 신원 회복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립니다. 또한 사도세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동조했던 시파 신하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벽파의 신하들을 대거 등용했습니다. 그녀가 벽파 쪽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정순왕후 수렴청정 기간은 3년이었는데, 그 기간 동안 정조가 24년이란 시간을 들여 노력했던 것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신유박해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를 통해 서양의 학문인 서학이 유입되었는데, 그중에는 천주교도 있었습니다. 천주교는 오늘날의 가톨릭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정신을 강조했으며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를 거부하는 것 등이 교리의 특징입니다. 신분의 차이가 엄격하거니와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매우 중요한 예로 생각한 조선에서는 당연히 이를 오랑캐 종교라 치부합니다. 그런데 정조 때부터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는 나랏일을 하는 신하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당시의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정조는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탄압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순조 즉위 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자마자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됩니다. 1801년에 발생한 최초의 대규모 박해가 바로 신유박해입니다. 당시 박해를 주도했던 세력이 바로 정순왕후 측근인 노론 강경 세력이었습니다. 그들의 박해는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명분이었습니다. 특히 정조 시절 성장했던 남인 세력이 이때 몰락하게 되는데, 그중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약용은 신유박해 이후로 무려 18년 동안 귀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유박해는 조선 사회의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음모가 얽힌 복잡한 사건으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권력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의 권력 다툼과 사상적 대립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세도정치 시작

순조 대부터 철종 대까지 3명의 임금을 거치면서 무려 약 60년 동안 세도정치가 전개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왕권은 약해지고, 안동 김 씨나 풍양 조 씨와 같은 가문들이 권력을 독점하게 됩니다. 세도정치를 외척정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세도정치의 원래 의미는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정치의 도리는 널리 사회를 교화시켜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 말기의 부정적인 외적 정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정순왕후를 안동 김 씨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조 때부터 안동 김 씨 가문이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순왕후는 김 씨 가문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안동 김 씨는 김조순의 딸이 왕비가 된 순간부터 등장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정조의 의도였습니다. 김조순은 영조가 왕이 되는 데 큰 공을 세운 김창집의 후손입니다. 김조순의 고조할아버지인 김창집은 영조를 보필하던 노론 신하였습니다. 즉, 김조순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김조순의 딸이 왕실을 지켜주는 역할을 잘할 사람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자기 할아버지를 왕으로 만들어 준 김조순의 집안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리고 김조순이라면 아직 나이가 어린 세자의 뒷배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정조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갑니다. 김조순의 아들들이 순조의 외척이라는 명분으로 자기들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