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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의 지원군, 출중한 능력, 정몽주의 죽음

by 다시한번도전 2024. 7. 3.

태종 이방원의 두 번째 어머니 '강씨'
태종 이방원의 두 번째 어머니 '강씨'

 

태종 이방원의 든든한 지원군

태종 이방원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세종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태조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 한 씨입니다. 이방원은 한 씨가 낳은 8명의 남매 중 다섯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원에게는 어머니가 1명 더 있었습니다. 바로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강 씨입니다. 이방원의 두 번째 어머니인 강 씨는 이성계와의 사이에서 3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고려는 일부일처제가 원칙이었으나, 원 간섭기 이후에는 여러 아내를 맞는 일이 허용되었던지라 이성계는 강 씨와 혼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처첩의 구별을 두지 않고 부인들을 동등하게 대우했다고 합니다. 강 씨는 이방원의 친어머니는 아니었으나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방원을 왕으로 만든 사람이 강 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정략결혼을 통해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이 된 강 씨는 이성계 집안의 도약을 이끌었습니다. 권문세족이 고려의 중앙 정계를 장악하여 이성계가 중심 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했을 때, 이 집안을 권문세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준 사람이 바로 강 씨였습니다. 강 씨는 개경에서 오랜 시간 권세를 떨친 권문세족 집안의 딸이었습니다. 강 씨와의 결혼으로 이성계의 집안 전주 이 씨는 무력, 재력, 명예까지 갖춘 세력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때 이방원의 나이는 8살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결혼은 어린 이방원에게도 큰 변화를 불러옵니다. 동북면에 살던 이방원이 수도 개경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방원은 강 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개경 최고의 교육을 받습니다. 강 씨는 이방원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습니다.

 

출중한 능력

이방원은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아들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했던 것은 물론, 날마다 부지런히 글을 읽었습니다. 똑똑한 데다가 성실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방원은 17살에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16살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곧바로 과거에 급제했다는 것입니다. 무신 집안인 전주 이 씨 가문에서 과거 급제자가 나왔기에 아버지 이성계는 이방원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뒤 정 5품 전리정랑이 된 이방원은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서, 왕명을 전달하는 정 3품 관직인 제학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관교'란 4품 이상 관리를 임명할 때 내리는 임명장입니다. 이성계는 사람을 시켜서 그 임명장을 두세 번이나 읽게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원에게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닥칩니다. 고려 궁궐에서 일하고 있던 그에게 요동 정벌을 떠난 아버지가 군사를 돌려 돌아온다는 날벼락같은 소식이 날아온 것입니다. 이 사건이 바로 위화도 회군입니다. 아버지가 왕명을 어겼다는 것은 집안 전체가 역적이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과 같습니다. 가족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이방원은 급히 포천으로 향합니다. 포천에는 집안의 농장이 있었는데, 친어머니 한 씨와 둘째어머니 강 씨가 모두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원이 도착해 보니 하인들은 소문을 듣고 모두 도망친 상황이었습니다. 이방원은 친어머니를 구한 뒤 곧장 또 다른 집으로 가 자신을 친자식처럼 보살펴주었던 강 씨까지 구합니다. 이방원은 어린 이복동생을 품에 안은 채 두 어머니와 함께 서둘러 도망쳤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해 가족을 구한 것입니다.

 

정몽주의 죽음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 집안은 하루아침에 고려 최고의 권력을 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경 선죽교에서 이성계의 친구이자 고려의 대학자 정몽주가 죽임을 당합니다. 다름 아닌 정몽주를 스승으로 모시기까지 했던 이방원이었습니다. 이방원이 이런 충격적인 일을 벌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정몽주가 아버지 이성계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목숨까지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려는 이성계파와 정몽주파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급진개혁파인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원했지만, 온건개혁파인 정몽주는 기존의 고려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펼치고 싶어 했습니다. 합의점은 보이지 않았고, 두 사람 사이의 골은 깊어만 갔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몽주는 고려를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그 측근 세력을 제거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정몽주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이성계가 낙마 사고로 크게 다쳐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고향 동북면에 요양을 가게 된 것입니다. 이성계가 자리를 비운 사이를 정몽주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재빨리 그 측근들을 귀양 보내버렸습니다. 이성계의 세력을 정계에서 쫓아낸 다음 이성계를 없애버릴 계획이었습니다. 정몽주가 귀양을 보내려 한 인물 중에는 이방원과 이성계가 매우 의지했던 인물도 있었습니다. 바로 이방원의 스승이자 이성계와 함께 혁명을 주도한 든든한 동반자 정도전입니다. 병상에 누워있던 이성계는 자신의 측근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정몽주의 바람대로 이성계의 측근들이 사라진다면 다음 타깃은 바로 이성계였을 것입니다. 이방원은 고심 끝에 부하들을 시켜 정몽주를 없앱니다. 이 결단 덕분에 이성계의 측근들은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고려 조정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